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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할 뿐이야

교회 안가고 참석한 어떤 결혼식


구대리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이러다 못 가는 줄 알았다.

역시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 늦더라도 시집 가는걸 보면.

그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이 구대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처자다.

무작정 결혼식을 주일에 한단다.

이렇게 남을 배려해 주지 않다니

주일엔 교회에 가야하는데

 

청첩장을 줘서 받아봤더니

 

…. 허거덩!

결혼식이 대구다.

갱상도 대구다!

주일에 대구까지 축하해주러 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에이, 같은 팀에서 가겠지. 이렇게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일날 결혼식을 하면 어떻게 해! 예배 때문에 못 가잖아~” 이렇게 선수치며 결혼식 불참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 못하도록 내 생각에 자물쇠를 달아놓았다. 크리스천이 주일 성수해야지…(나 같은 날라리도…)

 

마음 한 구석이 영 찝찝하다.

같은 팀이 아니라서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영 마음이 불편하다. 모두 나 같아서 많이 못 가서일까. 오랜만에 같은 사무실의 동료가 결혼하는데 마음껏 축하해 주지 못해 그런가보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회사에서 교통비의 반을 지원해 준단다.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다.

그래 가자! 우리 마눌림 KTX도 못 타봤는데 애기까지 데리고 가보자!

 

오랜만에 타보는 KTX는 역시 좁다. 우리 2살짜리 얼라는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다. 옆자리에 앉은 넘이 자꾸 쳐다보는 걸 보니 애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으니 애 좀 조용히 시키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우리 얼라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

 

어렵게 대구에 도착했다.  결혼식 끝나면 바로 출발할 요량으로 3 티켓팅 했는데 와이프가 어렵게 내려왔는데 대구 구경하고 가자고 해서 다시 6 티켓을 바꿨다. 여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지하철을 탔다. 엄마 등이 아니면 잠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업은 와이프는 나를 째려본다. 택시타지 왜 지하철 타냐고

 

반갑게 맞아주는 구대리를 보니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여자는 결혼을 해야 하나보다. 구대리도 이렇게 이쁠 줄이야. ㅎㅎ

결혼식을 마친 후 신혼여행가는 구대리와 빠이빠이 하고 우방랜드를  카드할인 받아 공짜로 들어갔다. 한껏 멋을 낸 우리 와이프, 높다란 하이힐을 신고 와서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여지껏 가만히 있던 얼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빽빽대고 울기만 한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놀이공원을 한 바퀴 둘러 본 후 서둘러 구경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

 

기차역에 도착해 보니 4. 예약한 기차를 타려면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도저히 기다리고 있을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도착해서 기차표를 반환했던 역무원에게 멋쩍어 하며 다가가 바로 출발할 수 있는 표로 교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일반석 좌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돈을 더 지불하고 우등석을 타게 되었다. 역시 돈 값어치를 한다. 자리가 넓다.

 

타자마자 우는 아이….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 결국 광명역까지 아이를 데리고 객차 중간 사이의 복도에 있어야 했다. ~ 우등석아~….

광명역에 내려 주차해 두었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 김포 톨게이트가 보이는 걸 보니 이제 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여기 서울역 분실물센터인데요. 지갑 잃어 버리셨죠?” 듣고 보니 뒷주머니에 지갑이 없어졌다. 아내와 아이를 내려 놓고 다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참 지지리도 운이 없는 날이다. 천근만근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지갑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주일 성수 안했다고 하나님께서 벌주시나 보다.

오늘 하루의 대구여행.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의 휴일은 이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오늘 결혼하는 구대리는 나에게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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